권위 의식 중 하나는 쉬운 말을 두고 괜히 어렵고 장황하게 말하는 버릇이다. “불 꺼 주세요”를 “조명 기구를 소등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식이다. 전문 분야일수록 권위 의식이 두드러진다. 한국과 미국의 중앙은행법에는 채권 매매를 굳이 ‘공개시장조작’이라는 어려운 말로 표현한다.
무엇인가를 사고파는 일은 너무 평범해서 대부분 나라에서는 그것을 중앙은행법에 담지 않았다. 금융 후진국인 미국만 법률에 담았다. 콤플렉스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보다 한참 늦은 1900년이 되어서야 금본위제도에 합류했다. 달러화 가치를 유지하려면 중앙은행인 연준이 외국과 수시로 금을 매매해야 했다. 그런 활동을 공개시장조작이라고 표현했지만, 그걸로 국내에서 국채까지 매매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불황이 찾아왔다. 소비와 투자는 물론 대출까지 감소했다. 대출 이자 수입 감소로 연준이 적자에 직면했다. 그러자 일부 지역 연준(지점)이 적자를 면할 요량으로 국내에서 국채를 매입했다. 100년 전 이맘때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경제가 좋아졌다. 오늘날에는 양적 완화라고 부르지만, 당시 지역 실무자들은 ‘가위 효과’라고 불렀다. 국채 매입으로 돈이 풀리면서 실업률이 하락한 모습이 마치 가위 날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부(연준위원회)가 가위 효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국채 매입을 통해 실물 경제에 대한 지방 실무자의 영향력이 커지면, 본부의 권위가 그만큼 약해진다고 걱정한 탓이다. 대공황 때도 실무자의 의견을 묵살하고 공개시장조작을 틀어막았다.
참다못한 의회가 1935년 본부의 권위 의식을 질타하면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라는 의결 기구를 신설하고, 거기에 모든 지역 연준을 참가시켰다. 그 위원회의 금리 결정을 전 세계가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다. 아랫사람 말을 경청하는 조직에 힘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