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보다 수입 적다는 소상공인들 결사저지 천명
도입 첫해 적용된 후 사장된 차등적용 이번에는 가능?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여러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업종별 차등적용을 두고 견해를 달리 하는 집단들의 이해가 상충하고 있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벌써부터 전운이 피어나고 있다. 노동계가 요구하는 1만 2천원 일률 적용을 두고 소상공인들이 절대항전을 외치면서 시작하기도 전에 불이 붙은 것. 심리적 마지노선이라 할 만원을 넘길 것인지에 대한 공방도 뜨겁지만 이번 결정에 가장 큰 쟁점이 될 부분은 업종별 차등적용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는 10시간에 가까운 격렬한 논의 끝에 부결로 노동계의 손을 들어준 전력이 있다. 지난 정부가 임명한 공익위원들 다수가 노조 측 손을 들어준 결과였다. 그러나 이번은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엇보다 업종별 차등적용을 놓고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을 통해 이를 검토하라는 의견을 내비친 때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공익위원들의 성향이 친정부 쪽으로 기우는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이유다. 그러나 마냥 낙관할 수만도 없다. 업종별 차등적용 자체가 논란을 부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 소상공인연합회 최저임금 동결, 업종별 구분적용, 주휴수당 폐지 등 요구
매해 치솟는 최저임금에 소상공인이 죽어나간다며 최저임금 차등적용과 주휴수당 폐지를 촉구하고 있는 소상공인연합회 임직원들. 사진제공 소상공인연합회
매해 최저임금 논의가 시작되면 가장 촉각을 세운 이들은 소상공인들이었다. 매해 큰 폭으로 오르는 최저임금의 직격탄을 온 몸으로 체감한 집단인 탓이다. 알바생들이 주인인 자신들보다 더 많이 벌어간다는 푸념이 말뿐인 구호가 아닐 정도로 실제로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 당락폭에 일희일비할 수밖에 없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무엇보다 올해는 노동계가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만이천원으로 요구한 뒤라 반발이 더할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연합회(회장 오세희)는 지난 4월 12일 소상공인연합회 대회의실에서 ‘2024년도 최저임금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2024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최저임금위원회 첫번째 전원회의를 앞두고 소상공인이 요구하는 최저임금안을 제시하고, 최저임금법 제4조1항에 명시된 업종별 구분적용의 시행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상공인 연합회 오세희 회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최저임금이 지난 2017년 6,470원에서 2023년 9,620원으로 48.7% 수직상승하는 동안 1인 자영업자 수는 2018년 398만 7천명에서 2022년 426만 7천명으로 늘었다”며 “늘어나는 비용과 떨어지는 매출로 인해 ‘나홀로’ 운영을 택할 만큼 한계상황에 내몰린 소상공인의 지불능력을 감안해 내년도 최저임금은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또한 “현재처럼 양극화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겨우겨우 버티는 소상공인은 일률적인 최저임금 적용으로 인한 부담을 감당할 여력이 없다”며 “소상공인이 고용을 유지하고, 서비스 경쟁력을 확보해 매출을 증가시키며 지속가능한 경제주체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의 차등적용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최저임금은 중위임금대비 62.2% 수준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 도달한 만큼,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관련법 개정을 통해 주휴수당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부적으로 따지고 보면 매년 해왔던 주장의 반복일 뿐이다. 결과론적으로 소상공인들의 이런 요구는 거의 반영되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보면 올해 역시 허울뿐인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그러나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소상공인들의 주장에 정부가 힘을 실어주는 기색이 역력한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이 공약을 통해 업종별 차등적용을 검토하자고 나선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올해만은 다를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는 모양새다. 현행 최저임금법에도 ‘최저 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는 것 역시 소상공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근거가 되고 있다.
최저임금 결정을 두고 확연히 달라진 기류 속에 올해는 소상공인을 위시한 경영계의 선전이 기대되는 형편이지만 뚜껑은 열려봐야 아는 법이다.
■ 적용 업종 기준 불명확, 최저임금 취지에도 맞지 않아
수위의 차이가 있긴 했지만 매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업종별 차등 적용에 대한 격론은 있어 왔다. 그럼에도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업종별 차등 적용이 부결된 것은 이것이 기본적으로 노동자의 생계비 보장이란 최저임금의 기본 취지를 훼손하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최저 임금을 사업의 종류별로 구분하여 정할 수 있다고 현행 최저임금법이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입 첫해인 1988년을 제외하고는 적용된 적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노동자의 생계비 보장이란 최저임금 취지 자체가 훼손되고, 더 낮은 임금이 적용된 업종에 대한 기피 현상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는 이유로 사문화된 것.
업종별 차등적용을 주장하는 경영계는 이미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이 도입하고 있는 제도란 점을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중이지만 서로의 환경이 다르기에 이를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고 있는 덴마크,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 자체가 없는 대신 노조와 사업주가 단체 협약을 통해 최저임금을 정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특정 산업이나 업종에 별도의 최저 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일본과 호주, 벨기에의 경우는 차등적용으로 제시된 임금이 기본 최저임금보다 더 높게 설정한 방식이다.
여러 우려에도 불구하고 올해 최저임금 논의 과정에서 업종별 차등적용에 대한 공방이 불 붙을 것은 자명하다. 현 정부가 공약으로 내세운 안건이니 쉬이 사장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소상공인들과 경영계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생산적인 논의라면 얼마든지 필요하고 또 그래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내는 것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다만 그를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들이 있다.
업종별 차등 적용을 하려면 업종 구분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현재처럼 산업 간 융합 흐름으로 업종 구분이 쉽지 않는 시점에서 차등화에 따른 행정 비용이나 사회적 갈등 비용을 넘어설 실익이 있을지 등을 판단하는 것이 그것이다.
단순히 천원, 이천원을 올리고 업종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 한다는 단시안적 접근이 아니라 최저임금 결정 구조 자체를 개선하고 그 변화에 따른 구체적인 효과를 제시하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토의가 진행되는 것이 우선이지 않을까.
경희대학교 경영대학원 이대성 교수는 “영세 사업장일수록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높은데, 이들 업종의 최저임금을 다른 업종보다 낮게 적용한다면 양극화의 심화를 이끌 수 있다”면서 “이렇게 된다면 저임금 노동자들의 빈곤 탈출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고 이 악순환이 업종 전체로 퍼져 '낙인 효과'가 생길 우려가 크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섣부른 결론 도출을 삼가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