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비리에도 솜방망이만 휘두르는 유명무실한 법
공정 구현은 뒷전...노조 때리기 용도 의구심 증폭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채용절차법 대신 새롭게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공정채용법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웃소싱타임스 이윤희 기자] 현 정부의 기조를 단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이견의 여지없이 공정이라는 단어로 축약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구호에 가장 어필하는 대상은 역시 MZ세대다. 공정과 MZ세대를 동시에 아우르는 정책을 꼽는다면 그는 채용에 관한 부분으로 귀결될 수 있다.
바로 그를 보여주는 일련의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25일,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현행 ‘채용 절차법(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공정 채용법’으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그것. 이날 발언에 나선 박 의장은기존의 채용절차법이 공정한 채용을 담보하지 못한다고 단언하며 공정한 채용을 이끌 수 있는 새 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 사전조율이 끝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채용과 관련된 주무부서인 고용노동부 역시 그에 앞서 현행 ‘채용절차법’을 ‘공정채용법’으로 전면 개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속내가 무엇이든 채용의 공정성에 누구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MZ세대들에게는 단비와 같은 소식이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채용절차법에는 결정적인 흠결이 다수 존재하는 탓이다. 그런 채용절차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공정의 시대에 어울리는 공정채용법을 채택한다는데 꺼릴 이유는 없다. 문제는 정부의 발표를 과연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냐는 의구심이 적지 않은 탓이다. 법의 직접적 수혜자인 청년들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노조 때리기 용의 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혹 때문이다.
■ 30인 이상 사업장만 적용 채용절차법 지적 잇따라
국민권익위원회는 내년 6월까지 ‘채용절차법’을 개정해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채용절차법 금지규정을 확대 적용하도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했다. 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채용절차의 공정화를 선언하며 첫 선을 보인 채용절차법은 그 거창한 구호와는 달리 실제론 있으나마나한 법일 뿐이라는 조롱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지속적인 불만이 도출되자 정부는 지난 2019년 7월 ▲출신지역 등 개인정보 요구 금지 ▲채용일정 및 과정 공지 ▲채용심사비용 부담 금지 ▲채용서류 반환 등을 주요 골자로 채용·면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당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담은 개정 채용절차법을 선보이기에 이르렀지만 상황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이 법이 유명무실한 법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법을 위반하는 이들에게 가해지는 처벌의 수위를 보면 알 수 있다. 채용절차법 위반 행위를 적발한 구직자들이 관계당국에 신고를 하더라도 대부분은 특별한 조치 없이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 이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지난 2021년 국정감사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공개했는데 이에 따르면 개정된 '채용 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이 시행된 2019년 7월 이후 해당 법 위반 행위로 신고된 건수가 총 775건에 달했다.
법 시행 첫해인 2019년에는 204건, 2020년에는 357건이 신고되었으며 2021년에는 8월까지만 214건이었다. 유형별로는 구직자의 키·체중 등 신체적 조건과 출신 지역, 혼인 여부, 재산 등 개인정보를 요구했다는 내용이 전체 중 428건으로 가장 많았다. 또 거짓 채용 광고가 129건, 채용서류 반환 의무 위반 행위는 80건이 누적 신고됐다. 채용 일정을 고지할 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45건이 신고됐다.
신고 건수도 사실 기대 이하였지만 더 실망스러운 건 사후조치와 관련된 내용이다. 신고된 775건 중 과태료가 부과되거나 시정명령이 이뤄진 경우는 206건으로 전체의 25%에 불과했던 것. 4건 중 1건만 과태료 등의 후속 조치가 이뤄진 셈이다. 사정이 이러니 기업 입장에서는 법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지금까지도 달라진 것은 없다.
올해 1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내용도 대동소이하다. 위원회에 따르면 법 위반으로 시정명령, 벌칙 등 제재 처분을 받은 사업장은 △2019년 40건 △2020년 56건 △2021년 58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지만 구직자는 구인자의 법 위반사항을 알기 어려워 유사피해 발생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라는 것.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다.
현행 채용절차법은 상시 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돼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서는 신고·조사대상에 해당되지 않는 한계를 안고 있음 역시 수차 지적된 사항이다. 채용절차법 적용대상인 30인 이상 사업장은 2020년 건강보험통계 기준으로 7만 4,670개소로 전체 사업장 191만 5,756개의 3.9%에 불과하다. 근로자(건강보험 가입자) 기준으로는 998만 9,718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절반 수준인 약 54.4%인 것으로 나타났다.
법 위반 시 처벌도 부실한 데다가 이 법이 적용되지 않는 대상도 절반을 넘어서는 만큼 현실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권익위의 판단이다. 더 이상 이를 좌시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권익위는 청년 등 구직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 내년 6월까지 ‘채용절차법’을 개정해 5인 이상 사업장에도 채용절차법 금지규정을 확대 적용하도록 고용노동부에 권고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함께 법 위반 예방과 공정채용 문화 확산 등을 위해 상습적인 ‘채용절차법’ 위반 사업장을 공표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정책제안 했다.
■ 고용세습 타파 등 노조 길들이기 법 아닌가 우려
문제가 많은 법을 개정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우려되는 것이 없지 않다. 정치적 셈법이 탄생시킨 또 하나의 기형아가 아닌가 하는 우려가 그것이다. 이는 지난 20일, 공정채용법 입법 계획을 밝힌 고용노동부 발표 현장에서 드러난 내용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날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노동조합 회계 투명성 강화 및 불공정 채용 근절 관련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공정채용법 입안 계획을 밝힌 것이 그렇다. 이 장관은 “기업의 채용 비리, 노조 고용세습, 채용 강요 등 불공정 채용을 보다 효과적이고 엄정하게 단속할 수 있을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입법예고할 것임을 천명했다.
문제는 불공정 채용 근절을 강조하는 자리에서 예시로 든 것이 채용 강요, 고용세습 등 주로 노조에 의한 불공정 행위라는 것이 못내 찝찝한 대목.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이라더니 고용부가 최근 단체협약에 장기근속 직원의 자녀를 우선 채용하는 고용 세습 조항을 유지한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금속노조 위원장, 기아와 기아 대표이사를 입건한 직후 이런 발표가 나왔다는 것이 더 의아하다.
고용세습은 균등한 취업 기회를 보장한 헌법과 고용정책기본법 위반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법을 개정해서라도 이를 바로 잡겠다는 의도지만 자칫 공정한 채용을 저해하는 진짜 대상을 오도하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사단법인 직업상담협회 신의수 이사는 “불공정 채용을 바로 잡는 것은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라면서도 “고용세습은 불공정 채용의 단편적인 부분일 뿐이며 정작 시정해야 할 것은 채용이라는 절대적 권한을 쥐고 을인 노동자에게 채용 갑질을 수시로 일삼는 사용자들을 단죄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이사의 말대로 공정한 채용 기회뿐 아니라 청년들의 희망마저 빼앗아가는 일부 몰지각한 사용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인 제재를 강구해 공정한 채용문화를 뿌리내리게 할 수 있는 진짜 공정채용법 도입이 무엇보다 시급함을 정부당국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